자유발언 - 김봉남의원
존경하는 군민여러분! 문봉도 의장님을 비롯한 동료의원 여러분! 그리고 의령군 발전을 위해 열정적으로 군정을 이끌고 계시는 오태완 군수님과 집행기관 공직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김봉남 의원입니다.
여러분, 1959년에 발표된 대중가요 처녀 뱃사공을 알고 계십니까?
“낙동강 강바람이 치마폭을 스치면
군인 간 오라버니 소식이 오네
큰 애기 사공이면 누가 뭐라나
늙으신 부모님을 내가 모시고
에헤야 데헤야
노를 저어라 삿대를 저어라.”
군민 애창곡으로 사랑받아온 이 노래는 1953년 유랑극단을 이끌고 함안군을 방문하였던 가수 윤향기, 윤복희의 부친인 故 윤부길이 함안군 대산면의 악양나루를 건널 때 나룻배를 저어주던 처녀 뱃사공의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노래로 만들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함안군 대산면 서촌리 산 99번지에 2000년 10월에 세워진 처녀 뱃사공 노래비 내용을 보면 “1953년 9월 유랑극단 단장인 故 윤부길 씨가 6.25 피난시절을 끝내고 서울로 가면서 함안군 가야장에서 공연을 마치고 대산장으로 가던 중 이곳 대산면 악양에 머물게 되었다. 당시 이곳 나루터에는 군에 입대한 후 소식이 끊긴 박기준 씨를 대신하여 여동생 두 명이 교대로 나룻배의 노를 저어 길손을 건너게 해 주고 있었다. 오빠의 소식을 기다리며 나룻배의 노를 젓고 있다는 애절한 사연을 들은 윤부길 씨가 ‘낙동강 강바람이’ 라고 시작하는 노랫말을 만들었고 한복남 작곡가가 곡을 붙여 1959년 가수 황정자의 목소리로 처녀 뱃사공이 발표되어 전 국민이 즐겨 부르는 국민 애창곡이 되었다. 이에 그 사연을 담아 이 노래비를 건립하게 되었다.” 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과 완전히 다릅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내용이 완전 엉터리인 것입니다. 그 처녀 뱃사공의 주인공은 현재 생존해 계십니다. 의령군 정곡면 적곡리에서 함안군 법수면 윤외리로 시집간 이필남 씨입니다.
처녀 뱃사공의 주인공 이필남 여사의 증언에 따르면 부친은 원래 함안군 여항면 내곡리에 살다가 처가인 의령군 정곡면 적곡리로 전입하였고 이후 적곡리 42□2번지 북실나루터로 이사하여 뱃사공으로 살았다고 합니다.
이필남 여사의 부친은 딸만 넷이라 공덕을 쌓으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생각에 자청해서 뱃사공 일을 시작하였는데 갑자기 병으로 돌아가시자 이필남 여사가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돕기 위해 아버지가 하시던 뱃사공 일을 이어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필남 여사는 1937년생으로 1953년 윤부길을 만났던 당시는 만 16세였으며, 홀어머니와 함께 정곡면 적곡리 42□2번지 북실나루터에서 생활하면서 6.25 전쟁 전후인 1951년부터 1955년까지 북실나루터에서 대산면 서촌리 산 125번지 다리미산 기슭으로 왕래하는 나룻배 사공을 하였고 결혼 후 북실나루터에서 약 1km 남짓 떨어진 함안군 법수면 윤외리에 살다가 현재는 가야읍에 살고 계십니다.
이필남 여사와 윤부길의 첫 만남은 1953년 9월 어느 날 다리미산 선착장에서 의령 북실나루터로 일행을 건너 주게 되었는데 이들이 바로 윤부길 유랑극단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의령 장날에 가서 공연을 하기 위해 지름길인 북실나루터로 왔던 것이며, 강을 건넌 일행은 날도 저물고 교통편이 없어 나룻가 처녀 뱃사공의 집에서 하루를 묵게 되었고 처녀가 거센 강에서 힘든 뱃사공 일을 하는 것을 눈여겨보고 무슨 사연으로 뱃사공을 하게 되었는지를 물었다고 합니다.
이필남 여사는 당시 홀어머니와 네 자매, 연약한 여자들만 있다고 말하기가 겁이 나서 없는 오빠를 군대에 가 있다면서 곧 제대하고 올 것이라고 말했고 이 사연을 들은 윤부길 단장은 처녀가 한 이야기를 믿고 처녀 뱃사공 노래 가사에 이 사연을 넣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2000년 10월 함안군 대산면 서촌리 산 99번지에 건립된 처녀 뱃사공 노래비의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함안군 대산면 악양나루터가 있었던 곳은 낙동강이 아닌 함안천이며, 둘째 이곳의 배는 노가 없는 줄 배였으므로 당연히 노 젓는 뱃사공이 없었으며, 비문에 적힌 군복무 중 행불자로 등재된 박기준 씨는 6.25전쟁 몇 년 전에 이미 세상에 없었던 사람으로 군복무 중 행불이라는 내용은 허무맹랑한 것입니다.
이렇듯 함안군은 당시 처녀 뱃사공이 버젓이 살아있는데도 불구하고 정확한 확인 작업이나 명확한 고증도 없이 엉터리로 처녀 뱃사공 노래비를 세우고 처녀 뱃사공 가요제를 개최해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2008년 실존인물인 이필남 여사와 그 주변인들의 증언과 의령향토문화연구소의 노력으로 비문의 내용이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고 또한 언론을 통해서 연일 보도가 되면서 함안군은 잘못을 인정했고 비문의 내용을 바로 잡겠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13년이 지난 지금도 그 비문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습니다. 우리가 신경 쓰지 않고 잊고 지냈던 세월동안 거짓이 진실인 것처럼 우리 후손들에게 전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수많은 세월이 흘러도 역사의 진실은 감출 수가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지자체 간의 갈등이 고조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이라도 잘못된 것은 꼭 바로 잡아야 할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오늘 본 의원은 자유발언을 통해 두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우리군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공식적으로 처녀 뱃사공의 진위를 밝히고 함안군에 그에 맞는 정당한 요구를 하는 것입니다.
둘째 의령 명품 100리길 조성사업과 연계하여 정곡면 적곡리에 북실나루터를 재연하고 나룻배 체험과 더불어 실존인물인 처녀 뱃사공 이필남 여사의 뱃사공 체험, 그리고 문화해설사를 배치하여 처녀 뱃사공에 얽힌 사연을 설명하는 등 관광지로 활성화 시키는 것입니다.
빠른 시일 내에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아서 처녀 뱃사공의 주인공 이필남 여사께서 “내가 의령군 정곡면 북실나루터에서 뱃사공을 했던 처녀 뱃사공이다.” 라고 당당히 밝힐 수 있도록 적극적인 추진을 당부드리며, 자유발언을 마치겠습니다. 끝까지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